이 글을 그저 저의 생각나는 대로 두서없이 수필로 쓸까 합니다. 순교의 원형이신 예수님을 닮은 우리가 될 수 있게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선교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루카 22.14-20)
교회의 본질은 선교인가 합니다. 선교는 하느님의 가르침을 남에게 베푼다는 뜻이 되겠지요. (베풀선 宣, 가르칠교 敎) 그레고리오 교황의 말씀에서 “사람을 하느님께 인도하는 것은 예술 중의 예술”이라고 하셨고 그러므로 복음을 이웃에게 선포하는 이는 ‘최고의 예술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교는 가정 복음화부터 시작하여 이웃으로 퍼져나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모든 신자들은 교회의 으뜸 사명인 복음 선포로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먼저 선교 현장에서 입교 대상자를 선택했다면 무조건 교리실에 인도할 것이 아니라 먼저 그의 믿음의 척도를 test 해 본 다음 영적의 어려운 신앙생활에 대한 심각한 고민도 함께 풀어준다면 이것 역시 錦上添花(좋은 일에 또 좋은 일을 더함)일 것입니다. 신부님의 사목 활동을 우리 신자들이 이러쿵 저러쿵 간섭할 이유가 없음을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신부님의 사목 활동에 발을 맞추어 사목중의 하나인 선교를 다할 뿐입니다.
문제는 그 “선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 가 문제가 되겠습니다. 과거에 집단적으로 선교에 임해 보았지만 시간 낭비로 효과 없는 결과만
본 것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앞으로는 수확 없는 선교를 지양하고 일대 일의 열매가 튼튼하게 열리는 그런 선교가 필요하고 열매가 튼튼치 않으면 땅에 떨어 지는 그런 열매가 결국은 도중하차하게 될 것입니다. 선교는 선교분과와 레지오 단원만이 하는 활동이 아니고 온 신자가 같이 하는 몫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전도서 6장 12절에 “하루살이처럼 덧없이 지나가는 짧은 인생에게 무엇이 좋은 일인지 누가 알겠는가? 죽은 뒤에 세상 돌아가는 일을 그 누가 알려주겠는가?” 과연 하느님의 말씀이고 깊이 묵상할 만한 구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제 선교의 방법을 찾아 실행에 박차를 가해봅시다. 먼저 내 자신이 기본교리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신앙생활의 기본인 교리를 모르고서야 어떻게 선교를 할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말하는 태도 그리고 질문보다는 재미있게 대화하는 것, 이 과정이 익숙해지면 서로 문답식으로 그 무엇을 풀어 나가면 좋은 효과를 얻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신조로 살아왔는가를
로마서 15장 3절에서 설명 할 수 있고 사도행전 8장 30-31절에 “그 무엇을 설명해 주지 않으면 그들이 어떻게 그 진리를 알 수 있겠는가”를 설명해 줄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와 같은 과정을 1개월 정도 대화를 나눈 다음에 교리실에 인도해 주면 대강 부담 없는 수업을 받게 될 것으로 믿는 바입니다.
어려운 교회공부를 마치고 세례를 받으면 신앙생활에 임하게 됩니다만 이제 그 다음이 큰 문제가 찾아옵니다. 신부님의 도움으로 영세는 했지만 미사에 참여해보니 그 무엇인가를 얻지 못하고 미사 참여 의식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 빠져 버리고 그 다음부터는 교회를 멀리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그런 고로 대부와 대모는 대자 대녀와 함께 영원히 산다는 의식아래 같이 신앙생활에 임했으면 합니다. 다시 말해서 대부 대모의 활동이 너무 미약하고 사명감이 없고 지도의식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세례식 때 대부 대모들의 역할이 그때만 효력이 있고 그 후는 그들을 방치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이 사람은 입교보다도 영세자의 관리가 절대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마
리의
양을 잃은 것을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했습니까? 이것 역시 묵상할 만한 구절이라고 생각합니
다. 끝으로 이 두서없는 글을 읽어보시고 이에
동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멘
소식을 전하는 선교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루카 22.14-20)
교회의 본질은 선교인가 합니다. 선교는 하느님의 가르침을 남에게 베푼다는 뜻이 되겠지요. (베풀선 宣, 가르칠교 敎) 그레고리오 교황의 말씀에서 “사람을 하느님께 인도하는 것은 예술 중의 예술”이라고 하셨고 그러므로 복음을 이웃에게 선포하는 이는 ‘최고의 예술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교는 가정 복음화부터 시작하여 이웃으로 퍼져나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모든 신자들은 교회의 으뜸 사명인 복음 선포로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먼저 선교 현장에서 입교 대상자를 선택했다면 무조건 교리실에 인도할 것이 아니라 먼저 그의 믿음의 척도를 test 해 본 다음 영적의 어려운 신앙생활에 대한 심각한 고민도 함께 풀어준다면 이것 역시 錦上添花(좋은 일에 또 좋은 일을 더함)일 것입니다. 신부님의 사목 활동을 우리 신자들이 이러쿵 저러쿵 간섭할 이유가 없음을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신부님의 사목 활동에 발을 맞추어 사목중의 하나인 선교를 다할 뿐입니다.
문제는 그 “선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 가 문제가 되겠습니다. 과거에 집단적으로 선교에 임해 보았지만 시간 낭비로 효과 없는 결과만
본 것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앞으로는 수확 없는 선교를 지양하고 일대 일의 열매가 튼튼하게 열리는 그런 선교가 필요하고 열매가 튼튼치 않으면 땅에 떨어 지는 그런 열매가 결국은 도중하차하게 될 것입니다. 선교는 선교분과와 레지오 단원만이 하는 활동이 아니고 온 신자가 같이 하는 몫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전도서 6장 12절에 “하루살이처럼 덧없이 지나가는 짧은 인생에게 무엇이 좋은 일인지 누가 알겠는가? 죽은 뒤에 세상 돌아가는 일을 그 누가 알려주겠는가?” 과연 하느님의 말씀이고 깊이 묵상할 만한 구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제 선교의 방법을 찾아 실행에 박차를 가해봅시다. 먼저 내 자신이 기본교리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신앙생활의 기본인 교리를 모르고서야 어떻게 선교를 할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말하는 태도 그리고 질문보다는 재미있게 대화하는 것, 이 과정이 익숙해지면 서로 문답식으로 그 무엇을 풀어 나가면 좋은 효과를 얻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신조로 살아왔는가를
로마서 15장 3절에서 설명 할 수 있고 사도행전 8장 30-31절에 “그 무엇을 설명해 주지 않으면 그들이 어떻게 그 진리를 알 수 있겠는가”를 설명해 줄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와 같은 과정을 1개월 정도 대화를 나눈 다음에 교리실에 인도해 주면 대강 부담 없는 수업을 받게 될 것으로 믿는 바입니다.
어려운 교회공부를 마치고 세례를 받으면 신앙생활에 임하게 됩니다만 이제 그 다음이 큰 문제가 찾아옵니다. 신부님의 도움으로 영세는 했지만 미사에 참여해보니 그 무엇인가를 얻지 못하고 미사 참여 의식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 빠져 버리고 그 다음부터는 교회를 멀리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그런 고로 대부와 대모는 대자 대녀와 함께 영원히 산다는 의식아래 같이 신앙생활에 임했으면 합니다. 다시 말해서 대부 대모의 활동이 너무 미약하고 사명감이 없고 지도의식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세례식 때 대부 대모들의 역할이 그때만 효력이 있고 그 후는 그들을 방치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이 사람은 입교보다도 영세자의 관리가 절대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마
리의
양을 잃은 것을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했습니까? 이것 역시 묵상할 만한 구절이라고 생각합니
다. 끝으로 이 두서없는 글을 읽어보시고 이에
동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