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 한인 천주교회 - Holy Angels Korean Catholic Church of Philadelph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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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떨어진 겨자 씨 한 알

6/16/2012

 
양 경숙(미쉘)

돋보기안경을 끼어도 잘 보이지 않는
땅위에서 가장 작은 먼지 같은 겨자씨여
풀잎의 숨소리에도 날라가 버릴 것 같은
그 가냘픈 몸속에 감춰 둔 놀랍도록 강인한 생명
주님. 우리의 마음 밭에도 소낙비처럼 내려 주시옵소서.

한 알이 땅속에 떨어져 열매를 맺을 때까지
아무도 돌보아 주지 않는 황량한 들녘에서 
더위와 가뭄, 폭풍과 비바람, 천둥과 번갯불 속에
온 몸을 맡기고 인내하며 성장을 멈추지 않고
또 하나의 생명을 낳아 하느님께 바치는 씨앗의 신비로움이여

빼앗기고 차별만 받던 설움 많은 갈릴래아 땅바닥에
노오란 유채꽃 모양으로 피어나 바람이 이끄는 대로
햇볕을 덮고 밤이슬 먹으며
들풀에서 큰 나무로 자랐습니다.

구름떼처럼 몰려다니며 지친 새들에게
보금자리 다 내주고 새까맣게 잘 익은 씨
양식으로 풍족하게 먹여주는 축복의 나무여
땅이 새 생명을 품고 서로의 영양분을 녹여내며
맺어진 끈끈한 사랑 속에 하늘 문이 열렸습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어도 산을 옮긴다고 말씀하신 주님
메마른 삶의 텃밭에 은총의 단비로 숲을 만들고
세상을 더욱 따뜻하고 풍요롭게 하소서
불꽃 하나가 울창한 산을 태우듯이
미지근한 믿음에 불을 지펴 주십시오.

새벽 문을 여는 붉은 햇덩이 위에도
저녁노을이 지는 깊은 산자락에도
쉴 새 없이 복음의 씨앗을 뿌리시는 주님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섬길 수 있는 마음을 주십시오.
당신의 말씀이 살아서 우리 안에 
아주 느리게 조금씩 움직이고 있습니다.

추수 때 알곡으로  당신의 곳간에 들일 수 있도록
열매 맺는 삶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어떠한 고난이 닥쳐와도 주저앉지 않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허락하소서.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지혜를 주셔서 매일 깨닫게 하시고
슬픔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위로해 주십시오.

하느님 나라가 엄청난 큰 나무로 자라서
땅위의 모든 민족과 나라가 새 떼처럼 몰려와
깃들이는 충만한  날들이 당신의 처절한 희생 위에
새롭게 펼쳐졌음을 오늘 눈물로 기억하게 하소서

피는 생명입니다

6/9/2012

 

설 금호(마리아)  

뒷마당의 데크 옆에는 에어컨디션을 가리는 어린 나무가 있습니다. 쉬지 않고 자라던 나무는 에어컨을 침범해 갔습니다. 가위를 들고 나무로 다가간 순간, 날카로운 부리로 머리를 찍을 듯한 공격적인 기세로 덤비며 요란하게 우는 새 두 마리, 때 마침 집안에서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잠시 후 저는 다시 나무로 다가서는데 역시 새들이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비로소 울음의 느낌이 다른 듯 했으나 의미는 알 턱이 없었고 알 수 없는 공포로 전정 계획은 취소를 했습니다. 남편의 말대로 과연 자그마한 새집 안에는 3개의 알이 있었습니다. 

그토록 울부짖던 한낱 미물의 모성애 앞에서 숙연해진 저는 일단 전정을 미뤘었습니다. 나무는 더욱 퍼져가는 사이에 알은 아기 새로 부화가 되었지만, 더 이상 전정을 미룰 수 없게 되자 조심히 곁가지부터 쳐나갔습니다. 간결해진 나무를 보면서 말했습니다. “햇빛과 통풍이 잘되니 어서 자라라” 먹이를 달라고 입을 벌리는 아기 새들을 보는 것은 매일의 즐거움이었습니다. 다음날도 아기 새를 보러 갔습니다. 그러나 새들의 가족은 보이질 않았습니다. 아직도 빨간 알몸이던 새가 날아 갈 리가 없다 생각하며 마침 발 앞에 떨어진 양말을 주우려던 찰라. 저의 온몸에 사악함의 전율이 흘렀습니다. 죽은 새끼 새들을 보았기 때문에. 

겨우 새집만 지탱하던 나무는 간밤에 불던 바람에 몹시 시달렸던 모양이었습니다. 결국 참을성 없는 저는 얼마간을 참지 못하고 사정없이 나무를 쳐 냈던 탓에 새들을 죽였던 것이었습니다. 이미 후회마저도 늦어버린 상황 앞에 그도 자연의 한 부분임을 하찮게 여긴 죄책감으로 그 날을 보내던 밤, 꿈을 꾸었습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새의 한 장면 이었지요. 바닷가를 걷는데 갑자기 날아든 갈매기가 저의 이마를 쪼아서 많은 피가 흘렀습니다. 비명을 지르며 집으로 돌아온 저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아버렸습니다. 집안 한가득 들어찬 새들이 노려보며 “산과 강과 계곡을 내가 창조했다. 너를 패하고자 검을 가져왔어(에스6장) 너는 나의 아기를 죽인 악마다 악마” 내 비명소리에 잠이 깬 저는 영화장면을 꾼 꿈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순간 내 순서의 금주의 묵상이 떠올랐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는 데나 죽음의 행실을 버리게 하고”(히브리,9,11) 왜? 예수님은 피로 흠 없는 재물이 되셨을까. 피 말고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 않으셨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피의 의미를 알 수 없었습니다. 건축업을 하던 아버지는 집을 질 때마다 닭의 피를 기둥에 뿌리는 이유를 묻자, 악귀들을 쫓는다고 했습니다.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발라 이스라엘의 장자들은 온전히 생명을 유지했었지요. 아! 피는 생명이었군요. 나를 구원코자 생명이신 피를 흘리셨고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사탄으로부터 생명을 지키려고 피를 바르는 일을 무신론자인 아버지도 아셨던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이렇듯 피의 의미는 누구에게나 생명이라는 것을 이제 분명히 알려 주셨군요. 

늘 새소리가 들리면 죽은 새들을 의식하던 저에게 하느님은 꿈속에서 피를 흘리게 하셔서 죄의식을 치유해 주셨던 것을 믿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저를 속속들이 거울처럼 환히 드려다 보시는 아버지 하느님이시기에. 그분을 위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악기로 새소리를 내어 봅니다. 새들의 화답이 들려옵니다. 이제부터 넌 무죄야. 자유라구!

봄날은 간다

6/1/2012

 
함 태기 루까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 / 아직까지 마음이 저려 오는 건 
그건 아마 사람이 피고 지는 꽃처럼 /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이야
아마도……. 봄날은 가네....... 무심히도 꽃잎은 지네 /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
가만히 눈감으면 잡힐 것 같은…….  아련히 마음 아픈 추억 같은 것들…….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인데 화창하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라는 단어에 “날” 자가 하나 붙으면 어딘지 모르게 오히려 쓸쓸해 보입니다. 19살 낭창낭창한 가슴에 까르르 웃음만이 있을 듯한 연분홍 나이. 사내라면 세상 무서울 것이 없던 나이. 눈을 감으면 항상 아련한 저 언덕너머의 추억. 봄날은 무심히 오고가면서 그리운 날은 켜켜이 추억으로 싸이고 봄날은 갑니다.

세대마다 봄을 느끼는 감각은 다르게 다가옵니다. 젊은이에게는 봄은 활력과  희망으로 다가오지만 좀 더  나이든 세대에게는 봄이어서 오히려 무심히 지는 꽃잎을 보면서 자기의 삶을 추억하게 됩니다. 누구에게라도 인생에 있어서 클라이맥스 즉 봄날은 어느 형태로든 존재하게 됩니다. 그 인생의 절정을 느끼지 못하다가 이미 멀리 지난 후에 그때가 봄날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삶이란 우리가 매일 부닥치는  오늘이며 과거로 돌아가지 못하는 소멸로 가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그리하여 절정에서 소멸로 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누구나 부부간에 자식 간에 그리고 경제적 문제와 병고로 인생 후반기에는 나름대로 무거운 짐을 하나씩 지게 됩니다.

지난주에 영주권이 아직 해결 되지 아니하고 영위하는 비즈니스도 시원치 아니하여 제법 똑똑한 아이들을 제대로 된 대학에 못 보내고 휴학과 복학을 거듭하다가 중도에 포기케 한 "A"라는 분과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장래를 위하여 이민을 왔건만 오히려 대학조차 졸업을 못시키고 여전히 생활은 궁핍하여 “A” 는 절망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저와 별로 가깝지도 아니하고 그리하여 별로 왕래도 없는 그가 나에게 담담히 소주잔을 넘기면서 인생을 이야기하였습니다. “내 인생의 봄날은 이제 갔다고......”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을 살지만 우리는 서로 남남 일수밖에 없음을 압니다. 배우자에게서 자식에게서 그리고 여러 사람들 틈에서. 세상에게서 우리는 언제인가 혼자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가끔은 이 지긋지긋하고 계속되는 고달픔 속에서 도망치고 싶지만 이는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외롭다고 힘들다고 느끼는 것이 삶의 모습입니다. 삶이 지쳐갈 때 우리는 허망함을 말합니다. 

“A”에게 이것을 통해 말합니다. “누구에게나 어느 형태로든 봄날은 가고 있어. 그대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어. 지금 어찌한다고 별로 달라질 것이 없는 현실에서 차분히 현실을 바라보고 인정하는 길이 최선이야. 너는 지금 외롭고 지쳐있어. 친구가 필요해. 언제라도 너의 초라하고 못난 모습을 그냥 바라보고 너 의 말을 들어줄 친구가 필요해.” 

그리고 조용한 성당의 한 귀퉁이에서 한번 실컷 울어봐. “주님 아시지요? 제 맘을.” 하고 기도하다보면  봄날을 보는 눈이 좀 변하고 새로운 마음이 생길수도 있어. 너만 외로운 것이 아니야. 우리는 모두 이렇게 세상을 이겨나가고 있음을 알게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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