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 한인 천주교회 - Holy Angels Korean Catholic Church of Philadelph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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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오빠와 나의 성소

4/27/2012

 
강 경숙 (멜라니아)  

그 자매님은 내 귀에 입을 대고 간절한 마음으로 속삭였습니다. “오빠, 예수오빠! 멜라니아예요!” 그리고     신부님께서는 내 머리에 성령안수 예절을 베푸셨습니다. 순간, 온몸과 영혼을 뒤흔드는 전율 속에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삼십 여 년 전, 눈물조차 메말랐던 인생의 사막 한가운데 내가 서있던 시절이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예수 오빠를 만났습니다. 오빠가 없었던 나에게, 그 감동어린 호칭은 나의 전부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땅위에 이처럼 위대한 이름이 또 있을까요? 하늘아래 이처럼 강력한 이름을 가진 분이 또 있을까요? 내 생애 중, 계곡의 폭포수처럼 희열이 쏟아질 때마다, 힘들고 고통스런 항해에서 역풍을 만날 때마다, 예수  오빠는 나의 둘도 없는 지지자였습니다. 아니 평범한 일상의 순간 순간 마다에서도, 작은 풀꽃의 기쁨으로     되뇌이는 소중한 이름이 되었습니다. 예수오빠! 진정 그분은 아름드리 큰 가슴으로 나를 껴안아 주십니다.  

절대자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은 다른 모든 것에서 떠나고 싶어집니다. 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분을 따라갑니다. 그렇게 특수한 부르심을 받은 이들을, 우리는 지극한 존경과 축복의 극치로 바라봅니다. 예수 오빠를 만났을 때, 저는  그 길에서 이미 제외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걸어야 할 또 다른 길이 있음을 그분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길을 가는 것은 첫째, 나에게 주어진 삶이 그 분 때문에 행복해야만 하는 것, 둘째, 죽는 날까지 나의 힘의 원천은 그 분께 있음을 잊지 않는 것, 셋째, 세상 속에서 내가 그 분의 가족임을 알리는 것, 넷째 나와 연관된 사람들뿐만 아니라 연관되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그분의 사랑으로 챙겨야 하는 것, 그래서 그분이 몹시도 만나고 싶어 하는 이들을 그분께로 데려오는 것입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오 12.48-50) 하신 말씀처럼 과연 그분은 우리의 큰 오빠이고 맏형님이며, 아버지께로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분입니다. 그분께로 가는 수많은 길들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모습대로 그 한분의 목소리를 들으며 걸어갑니다. “멜라니아야!” 하고 친근하게 내 이름을 부르시는 목소리가 영혼 안에 메아리칠 때, 나는 어린 동생처럼 그분께로 다가갑니다. 

오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진정한 혈연의 동생으로 살기위해 신실한 마음으로 그분의 집 문턱을 넘는 아침마다, 오빠는 높은 십자가 위에서 두 팔 벌려 반가워하십니다. “왔니?” 그 웃음 뒤, 당신을 죽여  나를 살리신 지고한 사랑의 신비를 읽으며 가슴이 아립니다. 해서 오늘도, 그분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그분의 뜻을 실천하려 애쓰며, 내 성소의 완성을 위해 지침 없는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주님의 건강 비법은 무엇입니까?

4/20/2012

 
이 상인 (브르노)

수선화 개나리 곱게 핀 화창한 봄날입니다. 지루한 경기 침체로 우울한 일상들이지만 주님은 부활과 함께 자연의 아름다운 꽃들을 우리에게 선물하여 주셨습니다. 비록 삶이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서러워하거나 노여워 마십시오. 그냥 그러려니 힘들고 지친 시간이 가고 나면 반짝이는 햇살이 오듯이 우리를 다시 밝게 하리라는 희망과 배짱으로 사십시오.

까맣게 그을린 얼굴이 때늦은 중노에 농부라도 된 기분입니다. 텃밭이 제법 쏠쏠하다 보니 약초며 화초며 채소 나물들이 그야말로 작은 식물원을 이루듯이 울창해졌습니다. 올해도 토마토, 고추, 오이, 호박, 쑤세미, 아주까리 정도를 심어볼까 모종에서부터 텃밭 고르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이런 일에 빠져 시간도 잊고 사는 맛이란 체험해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는 즐거움이지요. 작은 정성과 노력하는 만큼의 수확이 있고 그로 인한 작은 나눔이라는 삶의 소중한 진리를 몸소 체험하게 되는 효과도 빼놓을 수 없는 기쁨입니다. 

살아가면서 가장 절제하기 어려운 다섯 가지를 동의보감에서는 ‘양생오난’이라 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명예와 이익을 버리지 않고 탐내어 조바심하는 것. 둘째, 기쁨과 노여움을 절제하지 못하는 것. 셋째, 불건전한 여흥이나 여색을 멀리 하지 않는 것. 넷째, 맛난 음식과 술을 절제하지 못하는 것. 다섯째, 정기와 신기기 허하여 흩어지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동의보감은 이의 양생을 위해서 7가지 계율을 게을리 해서는 아니 된다고 하였습니다.  첫째, 언어를 고르게 하고 말을 많이 하지 않아 체내의 기운을 키워야 하고, 둘째, 색욕을 경계하여 정기를 키워야 하고, 셋째, 잡기에 빠지지 말아 혈기를 돋우어야 하고, 넷, 침을 함부로 뱉지 말아 내장의 기운을 길러야 하고, 다섯째, 분노를 삼가 해 간 기운을 키워야 하고, 여섯째, 음식을 탐하지 말아 위장의 기운을 길러야 하고, 일곱째, 사려 과도로 상심하지 말아 심기를 키워야 한다. 라고 하였습니다. 동의보감에서 강조하는 건강 비결은 초탈의 사유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장님을 눈뜨게 하시고, 앉은뱅이를 낫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게 하신’ 기적을 보이시고, 하신 말씀은 ‘다시는 죄짓지 말라’ 는 소박하고 엄중한 말씀이셨습니다. 예컨대, 병을 다스리고자 하면 먼저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그 마음을 바르게 하여 도에 합당하게 하며 병자로 하여금 모든 마음속의 의심이나, 걱정, 생각 모든 망념을, 모든 불평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래야 조그만 겨자씨에도 거대한 수미산을 담을 수 있고, 한 올의 하찮은 터럭 속에도 우주 만물을 끌어안을 수 있으며. 이슬 같은 육신이나 갈대 같은 몸속에도 위대한 영혼을 충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또 한 번 주님의 위대한 건강비법이 숨어 있습니다. 믿고 따르기만 하여도 절로 얻어지는 이 소중한 지혜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실행하여 보는 한 주간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4/7/2012

 
 양 경숙(미쉘)

뿌옇게 내려앉은 아침 안개 속에
넙죽하게 드러누운 들꽃마저 눈물을 떨구며
당신의 참혹한 죽음을 침묵으로 말하고 있을 때
욕심으로 찢기고 상처 난 마음의 돌무덤을 열어 주십시오.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 많은 인간들이
채찍질을 하며 침뱉고 조롱하는 것을 견디며
홀로 가신 그 길은 거룩한 가시밭 길

 칠흑 같은 동굴 속의 어둠이
새벽잠을 자는 산과 강을 두드려 깨울 때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깊은 절망과 두려움에 떨며
당신의 무덤으로 달려 간 그 연둣빛 사랑을
오늘 가슴마다 새싹으로 피어오르게 하소서  

이 세상 모든 죄 짊어지고 어린양처럼 희생된 주님이시여
 무덤 앞을 막았던 무거운 돌덩이 굴러가고
 텅 빈 무덤 속에 시신을 감쌌던 아마포의 따스함
당신의 부활을 알려 준 천사들의 기쁜 노래 소리
눈부신 빛이 온 대지를 가슴에 품고 어루만질 때
절망과 고통에 묶인 삶의 족쇄를 땅에 묻었습니다.    

짧은 하루, 짧은 우리의 생애 한 가운데에
바람처럼 나타나 살아 있는 말씀들 입에 넣어 주시고
하이얀 천사의 옷 입혀 주시는 주님
어둠 속에서 쓰러질듯 자갈밭 걸어 갈 때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있을 때도 
언제나 함께 계심을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한 생애는 굽이굽이마다
병들고 죄 많은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고
가장 잘 익은 사랑의 언어로 희망의 깃발 건네며
눈물의 강을 걷게 하셨습니다.     

죽음을 이겨 내고 빛 속으로 살아오신 주님
텅 빈 무덤 안에서 부활과 사랑은 한 덩어리가 되었습니다.
미움이 사랑을 이길 수 없고 폭력이 평화를 무너뜨릴 수 없다는
진리 앞에서 겸손한 기도 엮어서 당신께 바치렵니다.     

언제나 당신을 향해 귀를 열어 놓아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건망증 때문에
당신의 처절한 고통을 잊고 살았음을 용서하십시오.     

죽음의 손에서 인류를 구원하신 주님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는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는 4월의 강가에서
흘러도 흘러도 마르지 않는 사랑의 씨앗 뿌리며
갈릴래아로 가서 부활하신 당신 뵙겠습니다.

하느님의 생기 없이는 그 어느 것도

4/1/2012

 
설 금호 (마리아)

노트 다섯 장만한 크기의 나의 텃밭, 그 5분의 1에는 이미 장미 한 구루와 부추가 심겨져 있습니다. 나머지에는 무슨 채소를 심을까 아주 많은 궁리를 했습니다. 야채 종류가 많아선지 나의 텃밭이 작은 것인지 선택하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았습니다. 이것도 심고 싶고 저것도 심고 싶고 이걸 심으면 뭘 해먹고 저걸 심으면 뭘 해먹을 수 있는데…… 

상념만 키우다 어느 날 결국 오이와 깻잎, 고추, 토마토를 선택했습니다. 오늘은 겨우내 비었던 텃밭에 새로 올 귀여운 모종님들을 맞이할 준비를 했습니다. 흙을 뒤집고 잡초도 뽑고 움푹 패인 곳에 흙을 더하던 중 미처 뽑아내지 못한 실처럼 말라버린 오이 줄기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마른 그 줄기를 걷어내면서 지난해 오이와 더불어 즐거웠던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몇 번 오이를 심었지만 자라면서 모양 없이 휘거나 미처 크기 전에 떨어져 버리곤 했습니다. 이유를 수소문 하던 차에 인터넷과 농장주에게서 올바른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오이는 수분이 많은 채소이기에 많은 물이 필요하고 한 낱의 더위에는 잎과 줄기가 타버린다는 사실을……

아침저녁으로 물은 물론, 한여름에는 우산으로 햇볕을 가려주었습니다. 그래도 밑의 잎들은 마르면서도 새순들을 내면서 오이는 힘차게 줄기를 뻗어냈습니다. 그리고는 노란 꽃이 피었나하면 어느 사이 아기 발가락만한 오이들이 마디마디에서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오이는 드려다 본지 몇 시간 지나면 믿을 수 없을 만큼 훌쩍 자라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어찌나  기쁘던지 ‘내 마음은 주님이 지어내신 작은 궁전’ 에 있는 듯 했습니다. 

하루는 줄기들을 매어주다가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미처 매주지 못한 줄기가 뜻밖에도 위로 곧게 서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옆 줄기를 묶은 끈에서 풀린 눈에도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실을 넝쿨손이 꼭 움켜쥐고 있었습니다. 누가 그것을 가르쳐 주기라도 한 것처럼 아니, 어디선가 스스로 보고 들은 것처럼 놀라운 그 지혜(?)는 참으로 신기하고 경이로웠습니다. 오이는 넝쿨손들을 이용해 햇볕을 찾아 쭉쭉 위로 올라서는 그 여린 새싹의 힘! 그 힘은 어디로부터 오는 걸까요? 

바로 하느님의 입김, 그 힘의 작용이었습니다. 작은 씨앗 하나, 그 속에 들어앉은 씨앗보다도 더 작은 씨눈이 생명이었습니다. 그 생명은 스스로 싹을 틔었을까요? 하느님의 힘. 그 생기 없이는 오이는 물론, 아름드리 고목이나 길가의 작은 풀 한포기도 떡잎은 고사하고 실뿌리 한 가닥 내릴 수 없습니다. 하느님이 주시는 유전자가 작동해야지만 싹이 트고 잎이 나고 꽃을 피우고 열매가 열리게 되는군요. 이들은 주신 생기를 향하여 맡겨 주신 역할을 위해 충실하게 순명합니다. 마치 무릎을 꿇고 입을 모아 그리스도를 찬미하며 하느님의 전지전능을 찬양하는 것처럼 (필립 2,11)

저는 오이의 이 넝쿨 손 보다 몇 백배 더 훌륭한 10개의 손가락을 가진 두 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신앙을 위해 무엇을 잡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님의 옷자락에서 가는 실밥 하나라도 잡아야 하는데 왜? 내 눈은 장님처럼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것일까. 오이의 넝쿨손만도 못한 내 손으로 인해 지탱 할 곳 못 찾아 땅위로 나동그라지면 어쩌려고, 

겨우내 모든 식물들이 하느님의 생기로 인하여 일제히 깊은 잠속에서 힘차게 일어섰습니다. 마치 고운 소리로 예수님의 부활의 기쁨을 노래하려는 듯이…… 저의 두 손도 올해의 부활을 꼭 붙잡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저에게 주신 생기에 순명하기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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