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 한인 천주교회 - Holy Angels Korean Catholic Church of Philadelph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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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2/24/2012

 
김웅옥 (카타리나)

오늘 저에게는 예순 다섯 번의 사순시기를 맞이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사순시기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 지를 알게 된지는 약 삼십년이 되었습니다. 사순시기 동안 유혹을 뿌리칠 수 있도록 마음을 정리하고 기 도를 하는데도 조금만 주님과의 끈을 느슨하게 잡으면, 어느새 유혹에 그물에 걸려서 허우적거린답니다.

얼마 전 가벼운 교통사고 후 혈압이 급속도로 올라가더니 내려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혈압 약을 먹지 않고 식이요법으로 하려고 하는데 사탄들은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 나를 꼼짝할 수 없도록 유혹을 한답니다. ‘얘, 이것 네가 좋아 하는 음식이잖아 조금만 먹어봐, 아마 입에서 살살 녹을 거야. 그리고 먹고 나서 물을 많이 먹으면 희석이 되어 혈압과는 관계가 없게 돼.’라고 하는가 하면 ‘너는 잡식 동물의 돼지 띠잖아, 많이 먹어도 관계없어. 먹고 죽은 놈은 때깔도 좋다고 하더라.’ 또한 혈압에는 싱겁게 음식을 먹 으라고 하여서 간을 하지 않고 먹으려고 하면 ‘이게 무슨 맛이니? 입에서 넘어 가지가 않잖아, 간장을 조 금만 넣어서 먹어, 간장 조금 넣었다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야,’라고 하는가 하며, 머리 무게가 너무 무겁도록 나를 짓눌러서 운동을 하여 풀어야겠다고 했더니 ‘오늘 같이 추운 날 나가서 걸어봐라, 아 마 혈관이 터져 버릴 거야,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반신불수? 아니면……? 너, 생각하기도 끔찍하 지? 그냥 집에서 쉬는 것이 나을 거야.’라며 나를 유혹하여 아무것도 못하게 나를 묶어 놓고는 나의 등 뒤에서 킬킬 거리며 놀려 대고 있답니다.

이러한 나의 모습을 보면서,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의 단식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하루도 견디지 못하고 악마의 유혹에 이끌려 이리 저리 돌아다닐 것이 뻔합니다. 끼를 걸러 배가 고프면 아무 생각도 안 나고, 머리가 아프면서 먹을 것만이 머리에서 맴도는데, 어떻게 예수님은 일주일도 아닌 사십일 동안이나 이를 물리칠 수 있으셨을까요?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려면 주님이 나와 함께 함을 굳게 믿는 마음에서 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굳게 믿고,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신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유혹도 뿌리칠 수 있으셨습니다.

나의 믿음은 발바닥 신자로서, 주위를 두리번거릴 뿐, 일치를 이룬다는 것은 감히 생각도 할 수 없지만, 이번 사순 시기만이라도, 유혹에 흔들리게 만드는 나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사탄의 무리를 모두 재거하 여,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 가며, 내가 변화되도록 노력하여, 하느님의 올바른 자녀가 되도록 노력하렵니 다.

 

들것에 담긴 사랑

2/18/2012

 
강 경숙(멜라니아) 

어린 날, 초등학교에 갓 들어갔던 무렵, 다리를 심히 절었던 그 아이는 우리집에 자주 놀러왔습니 다. 한여름 긴 방학동안, 놀이 기구라고는 상상도 못하던 그 시절, 봉숭아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지던 장독대 옆에서 시골의 두 아이는 흙 마당에 막대기로 그림을 그리고 지우면서 뜨거운 햇볕아래 더운 줄도 모르고 잘 놀았습니다.  

“친구”라는 어렴풋한 개념의 그 아이가 좋아지는 만큼, 불편한 다리를 질질 끌며 나와 함께 잘 놀 아주는 아이의 시선을 차마 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저녁 해가 기우는 대문 밖으로, 절름거리 며 사라져 가는 그 아이의 뒷모습을 애잔하게 바라보며, 왜 저렇게 되었을까 ? 아프진 않을까? 나을 수는 없는 것일까? 차라리 나도 저렇게 되면 덜 미안할 것 같은데……. 어린 시절 생각들이 바람을 타고 날아다녔습니다.  

그렇습니다. 불쌍한 이들과 함께 하시려고, 불행한 이들을 홀로 둘 수가 없어서 그분, 우리의 주님 은 이 세상에 계시나 봅니다. 저 높고 영광스러운 자리도 마다하시고, 불평할 자격도 없는 한낱 피조 물들 사이에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데리고 오시오,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소. 고쳐주겠소. 편히 가시 오, 그리고 하느님께 감사하며 행복하시오.”

이 몇 마디 속에서 그분의 사랑은 용암처럼 녹아내리고 그분이 머물던 곳마다 문전성시를 이루었습 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그분의 이름으로 두세 명 이상이 모인 곳에는 어김없이 찾아오시니, 바로 믿 음의 공동체, 사랑의 공동체 안에 현존하시는 엄청난 능력을 우리는 체험하며 살고 있습니다.  

들것을 만들고자 합니다. 올 여름에 있을 성령안의 새 삶 세미나는 들것을 만드는 작업으로 시작합 니다. 그분의 소문은 들었으나 영혼과 육신의 중풍에 시달리며 꼼짝없이 드러누워 어찌 할 줄 몰라 하는 우리의 친구들을 그분께로 운반해 갈 것입니다. 정성어린 기도의 꽃들로 들것 주위를 곱게 장식 하고 간절한 소원의 표지판에 친구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새기어 그분이 알아보실 수 있도록 높이 매 달을 것입니다. 

전혀 새로운 삶으로 인도할 사랑의 그 들것은 어김없이 예수님 앞에 도착할 것이고 그분의 축복 속 에 우리의 친구들은 온전한 몸과 영혼으로 다시 태어나 기쁨의 화관을 쓰고 자유로이 걸어서 돌아올 것입니다. 예수님과 친구들의 지극한 사랑의 징표인 그 들것을 소중히 들고서 말입니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2/10/2012

 
이 상인(부루노) 

지난 주말이 대한(大寒)이 가고 한 해 절기가 시작하는 입춘 (立春)이였습니다. 立春하면 떠오르는 고사성어가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이라 하여 집집마다 대문이나 기둥에 써서 붙여 두 시던 조상님들의 생활의 지혜를 잊을 수 없지요. ‘立春大吉 建陽多慶, 立春大吉 萬事亨通, 立春大吉 萬 福雲興’ 등이 있으며, 참고로 그밖에 널리 쓰이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國泰民安 家給人 足, 掃地黃金出 開門萬福來, 父母千年壽 子孫萬代榮, 天增歲月人增壽 春滿乾坤福萬家, 門迎春夏秋冬 福 戶納東西南北財’.  

한겨울의 모진 추위와 배고픔과 어려움을 견디는 힘은 봄이 오고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봄은 꿈 과 희망을 부르는 말이지요. 날로 더해가는 경기의 둔화로 한숨과 절망으로 지새우는 우리 형제자매님 들에게도 새해 새봄은 꿈과 희망과 사랑이 넘치는 계절이 되였으면 좋겠습니다. 

입춘은 24절기의 하나로 양력으론 2월 4일경, 음력으론 대개 정월의 절기(節氣)로 (올해는 섣달에 입춘이 들었지만) 동양에서는 이 날부터 봄이라고 합니다. 입춘의 전날을 절분(節分)이라 하여 철(계 절)의 마지막이라는 뜻으로 이날 밤을 ‘해넘이’라고 부르며 콩을 방이나 문에 뿌려서 마귀를 쫓고 새해 를 맞는다고 합니다. 옛날 중국에서는 입춘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나누어, 첫 5일은 동풍이 불어 서 언 땅을 녹이고, 다음 5일은 동면(冬眠)하던 벌레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마지막 5일은 물고기가 얼 음 밑을 돌아다닌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농가에서는 보리의 뿌리를 캐어보고 그 해의 농사를 점치기도 합니다. 보리의 뿌리가 세 개 이상이면 풍년이 들 징조이고, 두 개이면 평년작이요, 한 개이면 흉년이 들 징조라고 합니다. 

입춘의 세시풍속 속에 담긴 의미들은 예나 지금이나 산업(농업)이 융성하고 나라가 편안하며 집안에 재물을 비롯한 복을 받기를 기원하는 소박한 기원들이 담겨 있습니다. 복을 기다리고 복 받기를 좋아 하면서도 복 짓는 데는 좀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의 한 주간이 되였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우리 나름의 인사말대로 “새해에는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만 말하지 마시고, 주님 말씀을 몸소 실천하며, 나보다 부족한 이를 위해 함께 나누며 사는 한 해가 되였으면 합니다. 나이가 들면 몸도 마음도 추워 집니다. 더 어려운 것은 희망도 할 일도 없다는 것이지요. 희망이라는 불씨는 내 스스로가 부지런히 가꾸지 않으면 소멸되고 말지요. 한 번 消滅데면 다시 붙이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적당한 공기와 탈 수 있는 소재가 있어야 함은 물론, 열기가 모아지지 않으면 소생하지 않듯이 늘 생각하고 가꾸고 부족함을 채워서 꺼지지 않는 촛불이 되어야 합니다. 

몸이 제일이라, 육체적인 운동만 할 것이 아니고, 하루에 한번 이상 마음을 다스리는 명상의 시간을 가지고 정다운 지인들과 꾸준한 대화를 통해, 또는 컴퓨터나 독서로 새로운 지식을 쌓아가는 생활 습 관을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흑룡의 한 해가 벌써 한 달이 지나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빠른 세월인 데 무얼 주저하시겠습니까? 지금이 바로 그 때요, 지금이 바로 한번 밖에 오지 않는 그 시간입니다.

 

‘고통은 기쁨과 희망을 확인해주는 은총’

2/3/2012

 
박성우 요한 주임신부님 

우리들은 다소간의 차이가 있지만 많은 고통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누구에게나 각양각색으로 찾아오는 고통 앞에서 아파하기도 하고 자신의 무력함을 느끼게도 됩니다. 특히 착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받게되는 고통은 풀 수없는 수수께끼입니다. 더구나 남에게 그렇게까지 피해를 주고 악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오히려 잘되고 크게 성공하는 경우를 볼 때 우리는 무한한 사랑의 하느님께 대한 회의와 실망까지도 느끼게 됩니다.  

제1독서에서 욥은 ‘인생은 땅위의 고역이요, 날품팔이와 같은 나날들, 고통의 밤들을 나누어 받았네’ 라며 희망이라고는 단 1%로도 생각할 수 없는 고통의 현실에 항거합니다. 마르코 복음에서도 역시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병자와 마귀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며 해가 지고 저녁이 되서야만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박쥐처럼 몰래 움직여야만 했던 병자들의 고통을 이야기합니다. 진정 괴로웠기에 어둠을 택해서라도 몰래 예수님을 찾아야 했던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랑과 자비의 예수님께서는 온갖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십니다. 여기서는 그 누구도 예외 됨이 없습니다. 어떤 죄를 지었든 간에 어떤 잘못을 저질렀던 간에 예수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모두가 용서를 받고 구원을 얻으며 고통에서 희망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고통 속에서도 예수님께 의지하여 한발자국 앞으로 다가설 수 있는 용기, 그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안에서 희망으로 계시는 주님을 만나볼 수 있고 치유됨을 약속받게 됩니다.  

사실 고통을 당할 때 이를 견디어 내기란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힘들어 아파하게만 되지만, 푸념보다는 ‘주님, 당신은 어디에 계십니까?’하고 용기있게 애원하고 매달려야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의 내가 그렇게 힘들어하는 고통 안에서 이미 나와 함께 지고 계셨던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고통은 바로 기쁨과 희망을 확인해 주는 하나의 신비한 은총입니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의 의미를 받아들이고 주님께 애원하며 다가서야합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깨달음만으로는 너무나도 나약한 우리 인간이기에 이러한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또 한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온갖 병자 고치기 위해 바쁘신 예수님께서는 몸소 새벽 먼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외딴 곳으로 가시어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크든 작던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통을 경험할 때 단지 괴로워 할 것이 아니라, 바로 그때가 기도가 필요한 순간임을 알아야겠습니다. 이러한 기도야말로 우리의 고통을 희망으로 충전시키는 밧테리임을 알아야겠습니다.  

사랑하는 본당 교우 여러분.

이민 사회에서 오는 모든 고통 속에서도 주님과 함께 주님 안에서 기쁨과 희망을 볼 줄 아는 교우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겪는 고통들은 하느님 나라의 더욱 더 큰 은총을 위한 준비의 과정임을 깨닫고, 언제나 하나된 마음으로 함께 사랑과 관심을 나누는 이쁜 말과 배려있는 행동으로 주님께 한발자국 더 다가서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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