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우 요한 주임신부님
우리들은 다소간의 차이가 있지만 많은 고통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누구에게나 각양각색으로 찾아오는 고통 앞에서 아파하기도 하고 자신의 무력함을 느끼게도 됩니다. 특히 착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받게되는 고통은 풀 수없는 수수께끼입니다. 더구나 남에게 그렇게까지 피해를 주고 악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오히려 잘되고 크게 성공하는 경우를 볼 때 우리는 무한한 사랑의 하느님께 대한 회의와 실망까지도 느끼게 됩니다.
제1독서에서 욥은 ‘인생은 땅위의 고역이요, 날품팔이와 같은 나날들, 고통의 밤들을 나누어 받았네’ 라며 희망이라고는 단 1%로도 생각할 수 없는 고통의 현실에 항거합니다. 마르코 복음에서도 역시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병자와 마귀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며 해가 지고 저녁이 되서야만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박쥐처럼 몰래 움직여야만 했던 병자들의 고통을 이야기합니다. 진정 괴로웠기에 어둠을 택해서라도 몰래 예수님을 찾아야 했던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랑과 자비의 예수님께서는 온갖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십니다. 여기서는 그 누구도 예외 됨이 없습니다. 어떤 죄를 지었든 간에 어떤 잘못을 저질렀던 간에 예수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모두가 용서를 받고 구원을 얻으며 고통에서 희망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고통 속에서도 예수님께 의지하여 한발자국 앞으로 다가설 수 있는 용기, 그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안에서 희망으로 계시는 주님을 만나볼 수 있고 치유됨을 약속받게 됩니다.
사실 고통을 당할 때 이를 견디어 내기란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힘들어 아파하게만 되지만, 푸념보다는 ‘주님, 당신은 어디에 계십니까?’하고 용기있게 애원하고 매달려야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의 내가 그렇게 힘들어하는 고통 안에서 이미 나와 함께 지고 계셨던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고통은 바로 기쁨과 희망을 확인해 주는 하나의 신비한 은총입니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의 의미를 받아들이고 주님께 애원하며 다가서야합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깨달음만으로는 너무나도 나약한 우리 인간이기에 이러한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또 한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온갖 병자 고치기 위해 바쁘신 예수님께서는 몸소 새벽 먼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외딴 곳으로 가시어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크든 작던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통을 경험할 때 단지 괴로워 할 것이 아니라, 바로 그때가 기도가 필요한 순간임을 알아야겠습니다. 이러한 기도야말로 우리의 고통을 희망으로 충전시키는 밧테리임을 알아야겠습니다.
사랑하는 본당 교우 여러분.
이민 사회에서 오는 모든 고통 속에서도 주님과 함께 주님 안에서 기쁨과 희망을 볼 줄 아는 교우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겪는 고통들은 하느님 나라의 더욱 더 큰 은총을 위한 준비의 과정임을 깨닫고, 언제나 하나된 마음으로 함께 사랑과 관심을 나누는 이쁜 말과 배려있는 행동으로 주님께 한발자국 더 다가서시길 기도드립니다.
우리들은 다소간의 차이가 있지만 많은 고통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누구에게나 각양각색으로 찾아오는 고통 앞에서 아파하기도 하고 자신의 무력함을 느끼게도 됩니다. 특히 착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받게되는 고통은 풀 수없는 수수께끼입니다. 더구나 남에게 그렇게까지 피해를 주고 악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오히려 잘되고 크게 성공하는 경우를 볼 때 우리는 무한한 사랑의 하느님께 대한 회의와 실망까지도 느끼게 됩니다.
제1독서에서 욥은 ‘인생은 땅위의 고역이요, 날품팔이와 같은 나날들, 고통의 밤들을 나누어 받았네’ 라며 희망이라고는 단 1%로도 생각할 수 없는 고통의 현실에 항거합니다. 마르코 복음에서도 역시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병자와 마귀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며 해가 지고 저녁이 되서야만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박쥐처럼 몰래 움직여야만 했던 병자들의 고통을 이야기합니다. 진정 괴로웠기에 어둠을 택해서라도 몰래 예수님을 찾아야 했던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랑과 자비의 예수님께서는 온갖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십니다. 여기서는 그 누구도 예외 됨이 없습니다. 어떤 죄를 지었든 간에 어떤 잘못을 저질렀던 간에 예수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모두가 용서를 받고 구원을 얻으며 고통에서 희망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고통 속에서도 예수님께 의지하여 한발자국 앞으로 다가설 수 있는 용기, 그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안에서 희망으로 계시는 주님을 만나볼 수 있고 치유됨을 약속받게 됩니다.
사실 고통을 당할 때 이를 견디어 내기란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힘들어 아파하게만 되지만, 푸념보다는 ‘주님, 당신은 어디에 계십니까?’하고 용기있게 애원하고 매달려야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의 내가 그렇게 힘들어하는 고통 안에서 이미 나와 함께 지고 계셨던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고통은 바로 기쁨과 희망을 확인해 주는 하나의 신비한 은총입니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의 의미를 받아들이고 주님께 애원하며 다가서야합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깨달음만으로는 너무나도 나약한 우리 인간이기에 이러한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또 한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온갖 병자 고치기 위해 바쁘신 예수님께서는 몸소 새벽 먼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외딴 곳으로 가시어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크든 작던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통을 경험할 때 단지 괴로워 할 것이 아니라, 바로 그때가 기도가 필요한 순간임을 알아야겠습니다. 이러한 기도야말로 우리의 고통을 희망으로 충전시키는 밧테리임을 알아야겠습니다.
사랑하는 본당 교우 여러분.
이민 사회에서 오는 모든 고통 속에서도 주님과 함께 주님 안에서 기쁨과 희망을 볼 줄 아는 교우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겪는 고통들은 하느님 나라의 더욱 더 큰 은총을 위한 준비의 과정임을 깨닫고, 언제나 하나된 마음으로 함께 사랑과 관심을 나누는 이쁜 말과 배려있는 행동으로 주님께 한발자국 더 다가서시길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