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 한인 천주교회 - Holy Angels Korean Catholic Church of Philadelph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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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6th, 2012

5/26/2012

 

끌고 미는 무덤덤한 평화에 대한 소견

강남옥 율리아 

둘째 고모가 맞선을 볼 때였습니다. 시골에서 얌전히 집안일만 하던 고모는 살빛이 희고 얼굴이 둥글납작하고 세상에서 우리 조카들만큼 예쁜 아이들을 못 보았다고 늘 말하던 ‘고슴도치’과 한국 고모셨습니다. 동네가 훤해지도록 훤칠한 총각이 전답께나 있다는 집 딸내미에게 장가를 들겠노라 맞선을 보러왔었습니다. 곁방에 겸상을 차려준 엄마와 작은 고모들은 곁방에 딸린 쪽문에 붙어 귀도둑이 되었습니다. 초등학교에 갓 들어간 저도 그 곁에 맹렬히 들러붙어 엄마와 고모들을 실소케 했습니다. 저는 그때, 태어나서 가장 멋있는 문어체의 문장을 경험했습니다. 이제 갱년에 접어들어 그 생생하던 멋진 말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합니다. “남자가 앞에서 리어카를
끌면 여자는 뒤에서 밀어주어야 한다.”라는 요지의, 경제개발 5개년 시대의 시대적 특성이 가미된 멋진 총각의 말이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 춘원의 ‘무정’을 읽을 때까지 그 보다 더 멋진 문장은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성령님께서 저와 함께 사시겠다고 오셨을 것이라는 것, 제 생의 리어카를 앞에서 끌고 가신다는 것쯤은 배워서 잘 압니다. 도미 전이니 20년도 더 넘은 일입니다. 대구 가톨릭신문사에 있던 친구를 따라 ‘대건 고등학교’로 기억되는 강당엘 간 적이 있습니다. 특이한 것에 혈안이 된 치기어린 나이의 기자 친구가, 자신을 포함해 ‘삼위일체’가 아닌 ‘사위일체’를 외치던 살짝 맛이 간 아줌마를 따라잡는 것을 돕느라 저도 바빴습니다. 집회장의 앞에서는 다리를 저는 사람이 나았고, 또 어떤 어떤 사람이 나았다고 했습니다. 성령대회였습니다. 그 집회가 뭔지도 몰랐던 저는, ‘참말로, 이 백주에 인간들이 뭐? 절름발이가 나았다고? 이 정신 나간 무리들이 있나?’ 싶어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와서 성령대회란 것을 가게 되었습니다. 울고 웃고 자빠지는 사람들이 모두 ‘집단 최면’에 걸렸다고 생각했고, 나도 그 최면에 걸리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고통스러웠기 때문입니다. 당최 체득되지 않는 그 최면을, 큰 소리로 말하고 큰 동작으로 휘저으면 내 것이 될 것이라 희망했습니다. 안 되더군요. 세월이 조금 흘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성당을 갈 것인가, 말 것인가로 고민합니다. 30분의 미사 시간을 번다고 내가 할 수 있는 덤의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합니다. 막판까지 뻗대다가 벌떡, 일어나 씻고 달려갑니다. 그리고는 주님 감사합니다, 저를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뻗대는 마음을 이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합니다. 일찍 준비해 가는 날도 물론 있습니다.

 앞에서 끄는 존재와 불화하면서 뒤에서 밀지 않고 뻗대는 것, 그 중에서도 성령님과 손발을 맞추지 않고 뻗대는 것처럼 불안하고 평화스럽지 못한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아침마다 저를 막판에라도 몰고 가시는 분이 성령님이라고, 주장하지 않겠습니다. 때로 막히고 때로 걸려도 어쨌거나 흐르는 대로 흘러온 생입니다. 제 어머니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있습니다. “하이고~ 우째 살았는지 모르겠다.”라는 것입니다. 저 역시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모르겠다.’는 말 속에는 제 어머니가, 그리고 제가 몰랐던 뭔가가 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모르겠는 그것, 그 힘, 그 이끎의 주체가 성령님이라고, 주장하지 않겠습니다. 제게만 오시지 않고, 옆에 앞에 뒤에 앉은 모든 이들에게 눈물로 몸 뒤틀림으로 이상하고 바보 같은 소리로 오시던 성령님의 편애를 탓하지 않겠습니다. 제게는
‘징후 없음’으로 오셨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제게는, 우리에게는, 모든 언어로 번역된 성경이 있지 않습니까? 각자의 언어로 듣고 읽을 수 있는 성령님께서 오신 오늘입니다. 성령님의 말씀은 너무 쉬워서 어리둥절합니다. 그 쉬운 말씀을 생활 속에서 구체화하기까지의 거리 속에 제 믿음이 엉거주춤 서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제게 하시는 말씀이 이제는 더 이상 멋지지 않습니다. “내가 앞에서 끌면 네가 뒤에서 잘 밀고 따라오너라.” 좀 더 멋진 말로 저를 꼬드겨보라고 퉁박을 놓고 싶습니다. 어떻게 밀고 끌었는지 모르지만 고모부님과 고모님은 아직도 해로하고 계신 중이고, 밀었던 뻗대었던 저 역시 그 분과 해로하리라 생각합니다. 가끔 바가지를 긁으면
리어카를 세워놓고 기다리시지만 결코 후진은 않는 성령님은 대단한 고집쟁이이십니다.

하지 감자

5/11/2012

 
박 준업(스테파노)   

청자빛 하늘이 / 육모정 탑 위에 그린 듯이 곱고 / 연못 창포잎이 / 여인네 맵시 위에 감미로운 첫 여름이 흐른다 /  ...중략...  
나는 / 활나물, 호밥나물, 젓가락나물, 참나물 찾던 / 잃어버린 날이 그립지 아니한가  / 나의 사람아 

노천명의 ‘푸른 오월’의 시 한 구절입니다. 주님의 푸른 순례가 한참입니다. 계절은 화려하고 생기가 충만   한데 옛날 어린 시절엔 모두 굶주리는 철이었습니다. 한해 제일 일찍 수확하는 감자가 있습니다. 보리타작하기 전인 6월에 들어있는 절기인 ‘하지’를 전후해 캐서 먹는데 이 감자는 우리가 겨울 내내 가을 농사 식량으로 살다가 봄이 되면서 모든 양식이 바닥이 나고 햇보리가 나올 때까지 연명하며 기다릴 수 있는 생명과도   같은 귀한 감자였습니다. 누렇게 익어가는 들의 보리를 보며 이 감자를 먹으면서 ‘보릿고개’를 넘었습니다. 울긋불긋 핀 꽃들과 초록색 잎은 우리에게  배고픈 철임을 알렸습니다.  

50년대 중반 시골 본당에는 당시 성 골롬반 선교회 신부님이 사목하고 계셨는데 외교력(?)이 아주 풍부해   미군 부대에서 감자를 얻어가지고 군 트럭에 싣고 오시면 수녀님들이 감자를 쪄 영양실조로 누렇게 뜬 주일 학교 어린이들에게 나누워 주셨습니다. 사람마다
배고픔을 넘긴 일들은 모두 다를 것입니다. 이 ‘보릿고개’를   넘는 동안 굶주려 통학 거리가 먼 학생들은 걷기가 힘들어 결석을 했고 잠정적으로 휴교 할 때도 있었습니   다. 혹 도시락을 싸온 학생은 조금씩 덜어서 점심이 없는 학생들과 나누워 먹곤 했습니다. 동족상잔의 전쟁과 근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런 일들을 겪고 살았습니다. 종래는 미국으로 부터 잉여 농산물을 무상으로   제공 받아 이 ‘보릿고개’를 해결했습니다. 누가됐던 며칠만 굶기면 빵 앞에 맥을 못 추고 인격마저 저버릴 수  있는 나약한  존재.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본 동북부 대지진과 쓰나미 참사 때 고급 공무원이 무너진 건물 속에서 굶주림에 지쳐 손을 벌리며 울면서 밥을 달라던 초라한 뉴스 장면이 떠오릅니다.   
  
오늘 날에는 먹을 것이 지천이며 풍족한 생활용품 속에서 그토록 수없이 널려있는 감사 앞에 만족과 행복을 느끼기는커녕 불화와 불만족으로 괴로워하며 살고 있지 않는가. 감자 한 개라도 이웃과 걱정하며 나누어   먹던 순수했던 심성은 사라지고 명품이 판을 치는 시대에 와서는 천박한 세상으로 되어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세상의 소금으로, 빛으로서,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명령적인 주님의 사랑을 오늘날 이 사회에서 실천하며   주님 백성으로서 일상생활에 어떤 삶으로 균형을 유지하며 살아 가야될지 묵상해 봅니다. 다음 달에 ‘하자’가  들어 있습니다. 오늘은 식탁에 껍질을 까지 않고 찐 붉은 감자가 놓여 있습니다. 감자 하나를 집어 껍질 채 먹어 봅니다.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허기졌던 시간들이 떠오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는 가지이다

5/5/2012

 
김 웅옥(카타리나) 

매일 쳇바퀴 도는 듯한 삶속에서 아침에 깨어나  창밖을 내다보며, 매일 같이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    는 밖의 모습은, 나에게 주신 오늘 하루의 소중함과 또한 잠시나마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여유로움을 주심에 감사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답니다. 

오늘은 지난겨울 눈보라치는 폭풍을 견디지 못하고 잘려 나가 말라 버린 나뭇가지들을 바라보며, 오늘의 복음을 묵상해 보았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

 지금까지 나는 모든 일은 내가 스스로 해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내가 열심히 일을 하면 무엇    이든지 이루어지며, 그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용을 쓰고, 밤을 새며 일을 한다고해도, 주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그것은 이루어 질수가 없음을 알았습니다. 나는 주님의 가지이므로, 모든 일에는 주님이 주인이 되어야, 내가  열심히 하는 일도 이루어 질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자신에 대해서 너무 자존심이 강했습니다. 이 자존심 때문에 주님을 내 안에 모시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를 사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더욱더 힘들었습니다. 나의 삶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 자신이 미워졌었고, 실망과 분노로 자신을 내동댕이 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주님의 귀한 존재이며 주님이 사랑하는 자녀이며 주님의 가지이므로  그 안에 머물러야 나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에게는 네 명의 자녀가 있습니다. 그중 한 아이는 길을 잃어버린 양이 되어 이리 저리 방황하는 것을 보는 나의 마음은 몹시 아팠습니다. 나는 자식의 마음을 전혀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들은 나와 눈을 마주하려고도 하지 않으므로 대화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찌할 수가 없었던 나는 한 손은 주님의 손을 잡았고 다른 손은 길을 찾기 위해 방황하는 아들의 손을 잡고 뛰었습니다. 얼마를 달렸을까요, 눈을 뜨고 보았더니 내가 주님의 손을 잡고 뛴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의 손 뿐 아니라 아들의 손까지 꼭 잡고 달려가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나 없이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줄기이고, 나는 가지이므로 줄기인 주님이 없다면, 말라 버린 가지같이 나는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님의 가지라는  것을 알고, 그 안에 머물려고 노력했더니, 주님은  사랑으로 나의 손을 잡아 주시어, 일어설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던 것이었습니다.  

포도가 열매를 맺으려면 줄기를 꼭 붙잡고 영양분을 골고루 보충해야 풍성한 열매를 얻을 있습니다. 그와  같이 나도 구원의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주님을 꼭 붙잡고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영양분을 골고루 마셔야 사랑의 포도가 주렁주렁 열릴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우리가 다가가기만 하면 우리를 얼싸    안고 모든 고통의 길을 같이 가시면서 우리를 평화의 길로 인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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