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준업(스테파노)
청자빛 하늘이 / 육모정 탑 위에 그린 듯이 곱고 / 연못 창포잎이 / 여인네 맵시 위에 감미로운 첫 여름이 흐른다 / ...중략...
나는 / 활나물, 호밥나물, 젓가락나물, 참나물 찾던 / 잃어버린 날이 그립지 아니한가 / 나의 사람아
노천명의 ‘푸른 오월’의 시 한 구절입니다. 주님의 푸른 순례가 한참입니다. 계절은 화려하고 생기가 충만 한데 옛날 어린 시절엔 모두 굶주리는 철이었습니다. 한해 제일 일찍 수확하는 감자가 있습니다. 보리타작하기 전인 6월에 들어있는 절기인 ‘하지’를 전후해 캐서 먹는데 이 감자는 우리가 겨울 내내 가을 농사 식량으로 살다가 봄이 되면서 모든 양식이 바닥이 나고 햇보리가 나올 때까지 연명하며 기다릴 수 있는 생명과도 같은 귀한 감자였습니다. 누렇게 익어가는 들의 보리를 보며 이 감자를 먹으면서 ‘보릿고개’를 넘었습니다. 울긋불긋 핀 꽃들과 초록색 잎은 우리에게 배고픈 철임을 알렸습니다.
50년대 중반 시골 본당에는 당시 성 골롬반 선교회 신부님이 사목하고 계셨는데 외교력(?)이 아주 풍부해 미군 부대에서 감자를 얻어가지고 군 트럭에 싣고 오시면 수녀님들이 감자를 쪄 영양실조로 누렇게 뜬 주일 학교 어린이들에게 나누워 주셨습니다. 사람마다
배고픔을 넘긴 일들은 모두 다를 것입니다. 이 ‘보릿고개’를 넘는 동안 굶주려 통학 거리가 먼 학생들은 걷기가 힘들어 결석을 했고 잠정적으로 휴교 할 때도 있었습니 다. 혹 도시락을 싸온 학생은 조금씩 덜어서 점심이 없는 학생들과 나누워 먹곤 했습니다. 동족상잔의 전쟁과 근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런 일들을 겪고 살았습니다. 종래는 미국으로 부터 잉여 농산물을 무상으로 제공 받아 이 ‘보릿고개’를 해결했습니다. 누가됐던 며칠만 굶기면 빵 앞에 맥을 못 추고 인격마저 저버릴 수 있는 나약한 존재.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본 동북부 대지진과 쓰나미 참사 때 고급 공무원이 무너진 건물 속에서 굶주림에 지쳐 손을 벌리며 울면서 밥을 달라던 초라한 뉴스 장면이 떠오릅니다.
오늘 날에는 먹을 것이 지천이며 풍족한 생활용품 속에서 그토록 수없이 널려있는 감사 앞에 만족과 행복을 느끼기는커녕 불화와 불만족으로 괴로워하며 살고 있지 않는가. 감자 한 개라도 이웃과 걱정하며 나누어 먹던 순수했던 심성은 사라지고 명품이 판을 치는 시대에 와서는 천박한 세상으로 되어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세상의 소금으로, 빛으로서,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명령적인 주님의 사랑을 오늘날 이 사회에서 실천하며 주님 백성으로서 일상생활에 어떤 삶으로 균형을 유지하며 살아 가야될지 묵상해 봅니다. 다음 달에 ‘하자’가 들어 있습니다. 오늘은 식탁에 껍질을 까지 않고 찐 붉은 감자가 놓여 있습니다. 감자 하나를 집어 껍질 채 먹어 봅니다.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허기졌던 시간들이 떠오릅니다.
청자빛 하늘이 / 육모정 탑 위에 그린 듯이 곱고 / 연못 창포잎이 / 여인네 맵시 위에 감미로운 첫 여름이 흐른다 / ...중략...
나는 / 활나물, 호밥나물, 젓가락나물, 참나물 찾던 / 잃어버린 날이 그립지 아니한가 / 나의 사람아
노천명의 ‘푸른 오월’의 시 한 구절입니다. 주님의 푸른 순례가 한참입니다. 계절은 화려하고 생기가 충만 한데 옛날 어린 시절엔 모두 굶주리는 철이었습니다. 한해 제일 일찍 수확하는 감자가 있습니다. 보리타작하기 전인 6월에 들어있는 절기인 ‘하지’를 전후해 캐서 먹는데 이 감자는 우리가 겨울 내내 가을 농사 식량으로 살다가 봄이 되면서 모든 양식이 바닥이 나고 햇보리가 나올 때까지 연명하며 기다릴 수 있는 생명과도 같은 귀한 감자였습니다. 누렇게 익어가는 들의 보리를 보며 이 감자를 먹으면서 ‘보릿고개’를 넘었습니다. 울긋불긋 핀 꽃들과 초록색 잎은 우리에게 배고픈 철임을 알렸습니다.
50년대 중반 시골 본당에는 당시 성 골롬반 선교회 신부님이 사목하고 계셨는데 외교력(?)이 아주 풍부해 미군 부대에서 감자를 얻어가지고 군 트럭에 싣고 오시면 수녀님들이 감자를 쪄 영양실조로 누렇게 뜬 주일 학교 어린이들에게 나누워 주셨습니다. 사람마다
배고픔을 넘긴 일들은 모두 다를 것입니다. 이 ‘보릿고개’를 넘는 동안 굶주려 통학 거리가 먼 학생들은 걷기가 힘들어 결석을 했고 잠정적으로 휴교 할 때도 있었습니 다. 혹 도시락을 싸온 학생은 조금씩 덜어서 점심이 없는 학생들과 나누워 먹곤 했습니다. 동족상잔의 전쟁과 근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런 일들을 겪고 살았습니다. 종래는 미국으로 부터 잉여 농산물을 무상으로 제공 받아 이 ‘보릿고개’를 해결했습니다. 누가됐던 며칠만 굶기면 빵 앞에 맥을 못 추고 인격마저 저버릴 수 있는 나약한 존재.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본 동북부 대지진과 쓰나미 참사 때 고급 공무원이 무너진 건물 속에서 굶주림에 지쳐 손을 벌리며 울면서 밥을 달라던 초라한 뉴스 장면이 떠오릅니다.
오늘 날에는 먹을 것이 지천이며 풍족한 생활용품 속에서 그토록 수없이 널려있는 감사 앞에 만족과 행복을 느끼기는커녕 불화와 불만족으로 괴로워하며 살고 있지 않는가. 감자 한 개라도 이웃과 걱정하며 나누어 먹던 순수했던 심성은 사라지고 명품이 판을 치는 시대에 와서는 천박한 세상으로 되어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세상의 소금으로, 빛으로서,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명령적인 주님의 사랑을 오늘날 이 사회에서 실천하며 주님 백성으로서 일상생활에 어떤 삶으로 균형을 유지하며 살아 가야될지 묵상해 봅니다. 다음 달에 ‘하자’가 들어 있습니다. 오늘은 식탁에 껍질을 까지 않고 찐 붉은 감자가 놓여 있습니다. 감자 하나를 집어 껍질 채 먹어 봅니다.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허기졌던 시간들이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