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고 미는 무덤덤한 평화에 대한 소견
강남옥 율리아
둘째 고모가 맞선을 볼 때였습니다. 시골에서 얌전히 집안일만 하던 고모는 살빛이 희고 얼굴이 둥글납작하고 세상에서 우리 조카들만큼 예쁜 아이들을 못 보았다고 늘 말하던 ‘고슴도치’과 한국 고모셨습니다. 동네가 훤해지도록 훤칠한 총각이 전답께나 있다는 집 딸내미에게 장가를 들겠노라 맞선을 보러왔었습니다. 곁방에 겸상을 차려준 엄마와 작은 고모들은 곁방에 딸린 쪽문에 붙어 귀도둑이 되었습니다. 초등학교에 갓 들어간 저도 그 곁에 맹렬히 들러붙어 엄마와 고모들을 실소케 했습니다. 저는 그때, 태어나서 가장 멋있는 문어체의 문장을 경험했습니다. 이제 갱년에 접어들어 그 생생하던 멋진 말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합니다. “남자가 앞에서 리어카를
끌면 여자는 뒤에서 밀어주어야 한다.”라는 요지의, 경제개발 5개년 시대의 시대적 특성이 가미된 멋진 총각의 말이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 춘원의 ‘무정’을 읽을 때까지 그 보다 더 멋진 문장은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성령님께서 저와 함께 사시겠다고 오셨을 것이라는 것, 제 생의 리어카를 앞에서 끌고 가신다는 것쯤은 배워서 잘 압니다. 도미 전이니 20년도 더 넘은 일입니다. 대구 가톨릭신문사에 있던 친구를 따라 ‘대건 고등학교’로 기억되는 강당엘 간 적이 있습니다. 특이한 것에 혈안이 된 치기어린 나이의 기자 친구가, 자신을 포함해 ‘삼위일체’가 아닌 ‘사위일체’를 외치던 살짝 맛이 간 아줌마를 따라잡는 것을 돕느라 저도 바빴습니다. 집회장의 앞에서는 다리를 저는 사람이 나았고, 또 어떤 어떤 사람이 나았다고 했습니다. 성령대회였습니다. 그 집회가 뭔지도 몰랐던 저는, ‘참말로, 이 백주에 인간들이 뭐? 절름발이가 나았다고? 이 정신 나간 무리들이 있나?’ 싶어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와서 성령대회란 것을 가게 되었습니다. 울고 웃고 자빠지는 사람들이 모두 ‘집단 최면’에 걸렸다고 생각했고, 나도 그 최면에 걸리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고통스러웠기 때문입니다. 당최 체득되지 않는 그 최면을, 큰 소리로 말하고 큰 동작으로 휘저으면 내 것이 될 것이라 희망했습니다. 안 되더군요. 세월이 조금 흘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성당을 갈 것인가, 말 것인가로 고민합니다. 30분의 미사 시간을 번다고 내가 할 수 있는 덤의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합니다. 막판까지 뻗대다가 벌떡, 일어나 씻고 달려갑니다. 그리고는 주님 감사합니다, 저를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뻗대는 마음을 이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합니다. 일찍 준비해 가는 날도 물론 있습니다.
앞에서 끄는 존재와 불화하면서 뒤에서 밀지 않고 뻗대는 것, 그 중에서도 성령님과 손발을 맞추지 않고 뻗대는 것처럼 불안하고 평화스럽지 못한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아침마다 저를 막판에라도 몰고 가시는 분이 성령님이라고, 주장하지 않겠습니다. 때로 막히고 때로 걸려도 어쨌거나 흐르는 대로 흘러온 생입니다. 제 어머니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있습니다. “하이고~ 우째 살았는지 모르겠다.”라는 것입니다. 저 역시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모르겠다.’는 말 속에는 제 어머니가, 그리고 제가 몰랐던 뭔가가 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모르겠는 그것, 그 힘, 그 이끎의 주체가 성령님이라고, 주장하지 않겠습니다. 제게만 오시지 않고, 옆에 앞에 뒤에 앉은 모든 이들에게 눈물로 몸 뒤틀림으로 이상하고 바보 같은 소리로 오시던 성령님의 편애를 탓하지 않겠습니다. 제게는
‘징후 없음’으로 오셨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제게는, 우리에게는, 모든 언어로 번역된 성경이 있지 않습니까? 각자의 언어로 듣고 읽을 수 있는 성령님께서 오신 오늘입니다. 성령님의 말씀은 너무 쉬워서 어리둥절합니다. 그 쉬운 말씀을 생활 속에서 구체화하기까지의 거리 속에 제 믿음이 엉거주춤 서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제게 하시는 말씀이 이제는 더 이상 멋지지 않습니다. “내가 앞에서 끌면 네가 뒤에서 잘 밀고 따라오너라.” 좀 더 멋진 말로 저를 꼬드겨보라고 퉁박을 놓고 싶습니다. 어떻게 밀고 끌었는지 모르지만 고모부님과 고모님은 아직도 해로하고 계신 중이고, 밀었던 뻗대었던 저 역시 그 분과 해로하리라 생각합니다. 가끔 바가지를 긁으면
리어카를 세워놓고 기다리시지만 결코 후진은 않는 성령님은 대단한 고집쟁이이십니다.
둘째 고모가 맞선을 볼 때였습니다. 시골에서 얌전히 집안일만 하던 고모는 살빛이 희고 얼굴이 둥글납작하고 세상에서 우리 조카들만큼 예쁜 아이들을 못 보았다고 늘 말하던 ‘고슴도치’과 한국 고모셨습니다. 동네가 훤해지도록 훤칠한 총각이 전답께나 있다는 집 딸내미에게 장가를 들겠노라 맞선을 보러왔었습니다. 곁방에 겸상을 차려준 엄마와 작은 고모들은 곁방에 딸린 쪽문에 붙어 귀도둑이 되었습니다. 초등학교에 갓 들어간 저도 그 곁에 맹렬히 들러붙어 엄마와 고모들을 실소케 했습니다. 저는 그때, 태어나서 가장 멋있는 문어체의 문장을 경험했습니다. 이제 갱년에 접어들어 그 생생하던 멋진 말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합니다. “남자가 앞에서 리어카를
끌면 여자는 뒤에서 밀어주어야 한다.”라는 요지의, 경제개발 5개년 시대의 시대적 특성이 가미된 멋진 총각의 말이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 춘원의 ‘무정’을 읽을 때까지 그 보다 더 멋진 문장은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성령님께서 저와 함께 사시겠다고 오셨을 것이라는 것, 제 생의 리어카를 앞에서 끌고 가신다는 것쯤은 배워서 잘 압니다. 도미 전이니 20년도 더 넘은 일입니다. 대구 가톨릭신문사에 있던 친구를 따라 ‘대건 고등학교’로 기억되는 강당엘 간 적이 있습니다. 특이한 것에 혈안이 된 치기어린 나이의 기자 친구가, 자신을 포함해 ‘삼위일체’가 아닌 ‘사위일체’를 외치던 살짝 맛이 간 아줌마를 따라잡는 것을 돕느라 저도 바빴습니다. 집회장의 앞에서는 다리를 저는 사람이 나았고, 또 어떤 어떤 사람이 나았다고 했습니다. 성령대회였습니다. 그 집회가 뭔지도 몰랐던 저는, ‘참말로, 이 백주에 인간들이 뭐? 절름발이가 나았다고? 이 정신 나간 무리들이 있나?’ 싶어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와서 성령대회란 것을 가게 되었습니다. 울고 웃고 자빠지는 사람들이 모두 ‘집단 최면’에 걸렸다고 생각했고, 나도 그 최면에 걸리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고통스러웠기 때문입니다. 당최 체득되지 않는 그 최면을, 큰 소리로 말하고 큰 동작으로 휘저으면 내 것이 될 것이라 희망했습니다. 안 되더군요. 세월이 조금 흘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성당을 갈 것인가, 말 것인가로 고민합니다. 30분의 미사 시간을 번다고 내가 할 수 있는 덤의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합니다. 막판까지 뻗대다가 벌떡, 일어나 씻고 달려갑니다. 그리고는 주님 감사합니다, 저를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뻗대는 마음을 이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합니다. 일찍 준비해 가는 날도 물론 있습니다.
앞에서 끄는 존재와 불화하면서 뒤에서 밀지 않고 뻗대는 것, 그 중에서도 성령님과 손발을 맞추지 않고 뻗대는 것처럼 불안하고 평화스럽지 못한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아침마다 저를 막판에라도 몰고 가시는 분이 성령님이라고, 주장하지 않겠습니다. 때로 막히고 때로 걸려도 어쨌거나 흐르는 대로 흘러온 생입니다. 제 어머니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있습니다. “하이고~ 우째 살았는지 모르겠다.”라는 것입니다. 저 역시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모르겠다.’는 말 속에는 제 어머니가, 그리고 제가 몰랐던 뭔가가 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모르겠는 그것, 그 힘, 그 이끎의 주체가 성령님이라고, 주장하지 않겠습니다. 제게만 오시지 않고, 옆에 앞에 뒤에 앉은 모든 이들에게 눈물로 몸 뒤틀림으로 이상하고 바보 같은 소리로 오시던 성령님의 편애를 탓하지 않겠습니다. 제게는
‘징후 없음’으로 오셨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제게는, 우리에게는, 모든 언어로 번역된 성경이 있지 않습니까? 각자의 언어로 듣고 읽을 수 있는 성령님께서 오신 오늘입니다. 성령님의 말씀은 너무 쉬워서 어리둥절합니다. 그 쉬운 말씀을 생활 속에서 구체화하기까지의 거리 속에 제 믿음이 엉거주춤 서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제게 하시는 말씀이 이제는 더 이상 멋지지 않습니다. “내가 앞에서 끌면 네가 뒤에서 잘 밀고 따라오너라.” 좀 더 멋진 말로 저를 꼬드겨보라고 퉁박을 놓고 싶습니다. 어떻게 밀고 끌었는지 모르지만 고모부님과 고모님은 아직도 해로하고 계신 중이고, 밀었던 뻗대었던 저 역시 그 분과 해로하리라 생각합니다. 가끔 바가지를 긁으면
리어카를 세워놓고 기다리시지만 결코 후진은 않는 성령님은 대단한 고집쟁이이십니다.